배재학당 76회 동창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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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 용 / 보 / 기
글작성자
 장정완/89 2015-04-02 16:28:41 | 조회 : 2213
제      목   술에 대한 온건한 명상




                            술에 대한 온건한 명상




   어쩌다 삼 일간 연짱 술을 마시다 보니 정신이 아직도 알딸딸하다. 그렇다고 내가 술 중독자는 결코 아니다. 나는 술 취한 것보다 명정한 상태에 있는 것을 더 좋아한다. 평소에는 술을 잘 마시지 않는다. 술 생각이 별로 없다. 그러나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 두주불사의 정신에 입각하여 술자리가 파할 때까지 자리를 피하지는 않는다. 이게 문제다. 삼 일간 술자리가 예약되어 나의 피치 못할 운명으로 받아들였을 뿐이고, 삼 일간 술에 취했다 깨어나고를 반복하면서 벗들과 술을 함께하는 황홀한 시간을 보냈지만, 그에 대한 혹독한 댓가를 치루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지끈거리고 세상이 가끔은 둘로 분리되기도 한다. 그리고 더 이상 파멸에 빠지지 않기 위해 이렇게 술에 대한 명상을 해본다.
  

둘째 날과 셋째 날은 통상 친구들과 마시던 대로 막걸리 소주 맥주 순으로 마셔댔기에 특별한게 없었지만, 첫째 날은 아주 각별했다. 우리 정동 사랑방에서 주최한 ‘막걸리 학교’ 탐방이라고나 할까 술과 강연, 시음과 평가, 맛과 느낌이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여태껏 술을 그저 따라 주는 대로 마시기는 해 봤지만 여러 종류의 술을 음미하고 평가하는 자리에는 처음이다. 그것도 오직 막걸리만 마셔보면서. 시음을 해본 막걸리는 6종으로 해창, 지평, 백련, 송명섭, 금정산정, 그리고 마지막엔 현대식 막걸리로 일명 작업주이다. 지금 나열한 술들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전통적이고 유명한 술이라고 한다. 이 술들을 여섯 잔으로 나누어 차례차례 한잔씩 음미하면서 맛을 평가하는 방식이었는데, 기실 나는  이 술 이름을 모두 다 처음 들어본다. 어떤 술은 경쾌하고 어떤 것은 탁하고 무겁다. 어떤 것은 달착지근하고 어떤 것은 그저 시큼털털할 뿐이다. 나는 막걸리 애호가는 아니다. 나는 드라이하거나 깔끔한 술을 좋아한다. 알코올 도수가 높으면 높을수록 좋다. 그러나 도수가 높으면 술값이 많이 들어가니 가급적 싸고 깨끗한 맛의 소주를 선택한다. 어쨌거나 내가 시음해본 막걸리를 일일이 설명하기는 어렵다. 다만 맛본 술중에서 ‘금정산정’이 제일 맘에 들었는데 설명을 듣고 보니 과연 금정산정이 다른 막걸리들의 통상 도수인 6도 보다 독한 8도짜리 술이란다. 그래서 그런지 다른 막걸리 맛보다 탁하고 텁텁하지만 구수한 누룩향이 깊은 맛과 감칠맛을 더해주면서 문득 향수감에 젖게 한다.  


향수감이라! 무릇 모든 음식과 요리의 최고 경지는 맛보는 이로 하여금 불현듯 향수감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라 알고 있다. 어떤 중국영화(제목을 잊었음!)에서 당대 요리의 달인이 만든 ‘팔보채’란 코스요리를 고관 내시가 맛보는 장면이 있는데 마지막 요리코스에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향수를 불러일으켜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최고의 찬사를 발하는 장면이다. 그런데 사실 그 이면에는 요리사의 복수심이 숨어있다. 이 환관에 의해 가족이 몰살당한 요리사는 환관에게 복수하기 위하여 뼈를 깎는 각오로 최고의 요리과정을 익히고 자신이 직접 요리를 하여 환관에게 대접하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자신이 직접 요리를 만들어 환관에게 대접하기 위해 자신의 스승을 죽게까지 했으니 그 복수심에 으스스해진다. 요리사는 환관이 이러한 향수감과 황홀감에 빠져있는 틈을 노려 이 환관을 독살할 계획이었다. 물론 다른 방식이기는 하나 결국 이 환관은 황홀감에 취한 채로 낡은 똥두깐에 빠져죽었으니 통쾌한 복수는 이룬 셈이다. 이 영화의 주제는 ‘칼’인데 모든 요리의 최고의 맛은 바로 칼에서 나온다. 최고의 칼은 살인을 행하는 검에서 나오는 게 아니고 요리를 하는 식칼 맛에서 비로소 나온다는 유쾌한 역설, 그래서 숱한 살인을 불러일으켰던 칼 한자루가 불 속에 녹여져 재탄생 했으니 그게 요리용 식칼로 변신했을 때 비로소 최고의 명검이 된다는 이야기다. 죽음의 논리를 넘어선 삶의 생성논리로의 연금술적 변환. 그런데 결국은 이 식칼로 만든 요리가 통쾌한 복수를 하는 결과를 만드니 과연 명검은 명검이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곁가지로 새고 말았다.


‘금정산정’ 막걸리 얘기를 좀 더 해보겠다. 이 얘기는 오늘의 강사이자 막걸리학교 교장인 허시명이 쓴 책 ‘막걸리, 넌 누구냐?’라는 책에서 읽은 내용이다. 막걸리를 마시면서 궁금증이 일어나 몇 번 질문을 했더니 직접 자신이 쓴 책까지 하사해 주신다. 이게 웬 횡재인가 고맙기 이를 데 없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박정희 대통령은 5.16 군사혁명을 일으키기 전 부산에서 군수사령관으로 재직했다. 그 당시 금정산성 동문 밖에 술을 잘 빚는 ‘동문 할매’가 주막을 하고 있었다. 애주가였던 박정희는 종종 그 주막을 찾아와 술을 마셨고, 대통령시절에도 그 밀주 맛을 못 잊어 해운대 동백섬에 있던 휴양지로 쉬러 올 때면 금정산정막걸리를 찾았다고 한다. 그러던 차 1979년에 박 대통령이 연두순시를 와서 부산시장에게 금정산성의 밀주 얘기를 물었다. 그 일이 계기가 되어 금정산정막걸리를 양성화하는 조치가 내려졌다한다. 그러고 보면 금정산정막걸리는 막걸리를 사랑하는 박대통령으로부터 특혜를 받은 셈이다. 박대통령의 막걸리 취향은 아주 독특해서, 먼저 독주부터 마시고는 마지막에 막걸리로 입가심을 했다. 79년도 10.26사태 때 궁정동 만찬에서도 막걸리는 시바스 리갈에 이어 마지막을 장식하기 위해 상 밑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지만, 뜻밖의 총성에 갈 길을 잃었다고 전해진다.


막걸리의 맛을 좌우하는 것은 누룩이다. 누룩은 단순한 밀기울덩어리가 아니다. 그 속에는 그 지방의 물과 공기와 햇살과 바람이 들어있다. 사람의 발끝과 손끝을 거쳐서 둥글넙적하게 만들어진 덩어리를 뜨뜻한 밀실 공간이나 흙집 안에 쌓고 군불을 지펴서 보름간 30-40도를 오르내리게 한다. 그러면 누룩위에 눈송이처럼 하얀 곰팡이가 소복하게 내려앉는다. 이것을 다시 일주일간 바짝 말리면 누룩덩어리가 된다. 그 자방에서만 떠도는 곰팡이들이 빚어내는 작품인 것이다. 그래서 오랜 숙성기간을 거친 김치 맛처럼 누룩은 지방마다 다른 빛과 맛을 지닌다. 고두밥과 누룩을 7:4의 비율로 섞어서 밑술을 만드는데 4일, 숙성시키는데 6일 정도가 걸린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박목월 시인의 <나그네>에서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이라는 한 구절은 우리에게 곧바로 아련한 향수감을 불러일으킨다. 농촌에서 살아본 사람들은 이 싯구절처럼 막걸리 익어가는 향기를 잊지 못한다. 나도 어린 시절 농촌에서 자랐기 때문에 (지금 이글을 쓰고 있는 이곳 서울 방배동이 내가 태어난 마을인데 예전에는 깡 농촌이었음을 상기해주기 바란다.) 술 익는 마을의 전경과 향내를 몸 안에 체득하고 있다. 어린 시절 할머니가 만들었던 밀주의 향기를 내 어이 잊을손가. 따끈한 골방 한 구석 이부자리에 칭칭 감겨 익어가는 술독의 향기는 아련한 향수감과 함께 소박하게 어우러져 살아가는 농촌 사람들, 질박한 시골 마을 풍경의 한 표상이 된다. 어린애에게 술은 당연 금기 식품이었다. 그래서인지 막걸리 익어가는 향기는 더욱 유별나게 자극적이고 도발적인 냄새로 기억된다. 그 냄새는 막걸리를 마실 때 맡는 냄새와는 조금 다르다. 그래서 이제는 잊혀진 냄새이지만 그 냄새에 대한 기억은 여전히 뚜렷하다. 기억을 더듬어 올라가보니 술을 처음 맛본 게 한 대여섯살 무렵이었나 보다. 봄철 모내기 때 심부름으로 술 주전자를 나르다가 목이 말라 술 한 모금 찔금 마셨을 뿐인데 그만 술맛에 반하여 술 주전자의 절반을 비우고 내처 논두렁에 쓰러져 잠들었던 아련한 기억이 있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하다보면 예전 농촌에 살았던 어린아이들은 이런 경험을 한두번씩 겪었다고 하니 새삼 유별난 것도 없지만 그러고도 욕먹은 기억은 없으니 어른들은 어린애 탓을 하지 않는 법이다.  

마지막으로 마셔본 술을 일명 작업주라 하는데 작업주란 여자를 꼬시거나 연애를 걸 때 마시는 술로 병모양도 날렵하게 예쁘고 맛도 가볍고 달착지근하다. 막걸리 맛은 통상 ‘시큼털털’한 맛이 나는 법인데 요즈음은 ‘달보드레’한 맛이라 표현한다. 달보드레? ‘연하고 달콤하다’라는 예쁜 느낌이 드는 순 우리말이란다. 막걸리가 현대화되고 막걸리 맛이 한류 열풍을 타면서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으니 오랜 잠에서 깨어난 토종말이렷다. 전통적으로 막걸리의 주재료는 쌀이었으나 1960년대 이후 밀가루와 옥수수가 주원료였다. 다들 잘 알다시피 우리가 가난한 시절에는 쌀이 부족해서 민간 집에서는 막걸리를 담그지 못하도록 했을 뿐만 아니라 주재료 역시 시큼털털한 맛을 내는 혼합 곡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1990년대부터 쌀이 주재료로 복귀하면서 막걸리의 맛은 경쾌하고 산뜻해졌다. 쌀을 사용하면서 활용 폭이 넓어진 전분당이나 올리고당 같은 감미료가 첨가됨에 따라 그 맛이 달보드레해졌다고 한다. 작업주 중에 대표적인 것이 야간문주인데 야간문이란 약초 넣고 만든 술로 여인이 ‘밤에 빗장을 풀어주는 약초’라는 뜻이 있을 정도로 정력 강화에 효능이 뛰어나다는데 언젠가 한번 맛보고 싶다. 아마도 오줌을 누면 오줌 빨에 요강이 엎어진다는 복분자에 버금가는 술이렷다.

그러고 보면 술 이름에서도 그렇듯이 술과 섹스는 늘 상관관계가 있는가보다. 술을 마시면 두뇌가 활발달해지고 감각이 열리고 성적으로 충만해진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적당히 마시는 한해서다. 많이 마시면 성적으로는 흥분하지만 성기가 취해서 힘을 못 쓰는 일종의 성적불구 모드로 전환되는 것을 겪어보신 분들은 잘 아시리라. 그래서 ‘여자들과 노는 술집’에 가면 과도한 성적욕망과 이에 따르지 않는 몸의 불일치에 따라 헤프게 돈만 쓰고 애만 태우다 끝나는 경우가 태반이다.  



술 이야기가 나왔으니 술꾼들의 얘기가 빠질 수 없다. 우리시대의 진정한 주당은 과연 누구일까? 현 사회에서는 기억되는 인물이 별로 없다. 그러나 조금 전 윗세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주당파 로맨티스트들을 만나게 된다. 1950년대 중반에는 명동 한 모퉁이에 자리한 주로 막걸리를 파는 「경상도집」에 시인 박인환이나 김수영 등을 포함하여 송지영, 김광주, 김규동 등의 문인들이 모여 술을 마시곤 했다. 그 중에서 박인환은 가장 독보적인 존재다. 「목마와 숙녀」는 대중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박인환의 대표작이다. 음미할수록 걸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술에 취하지 않고는 절대 쓸 수 없는 시. 술 취한 자만이 헐벗은 인생에 대한 각성을 노래할 수 있는가하는 의문을 품게 하는 시이다.  

한 잔의 술을 마시고 /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숴진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 늙은 여류 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두 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 눈을 뜨고 한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 / 가을 바람 소리는 /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그는 시인 이상의 기일을 기념하기 위해 친구들과 술을 마신 다음날  가슴의 통증을 호소하다가 죽었다.
그의 묘지에 친구들은 평소 그가 즐겨 마셨던 조니워커 한병과 카멜 담배 한갑을 바쳤다.


자타가 공인하는 애주가는 역시 조지훈 시인이다. 그는 진정 술을 사랑하는 사람이고 술에 관한 일화나 글을 많이 남긴 사람이다. 또한 그는 술꾼들을 18가지로 분류하여 ‘주도유단’이란 단증까지 발급하고 있다니 끝 모를 술 사랑이 엿보인다. 그는 말하길 “주도에도 엄연히 단(段)이 있다는 말이다. 첫째 술을 마신 연륜이 문제요, 둘째 같이 술을 마신 친구가 문제요, 셋째는 마신 기회가 문제며, 넷째 술을 마신 동기, 다섯째 술버릇, 이런 것을 종합해 보면 그 단의 높이가 어떤 것인가를 알 수 있다. 음주에는 무릇18의 계단이 있다.” 이렇게 시작되는 주도유단이다.

주도 7단을 낙주(樂酒)라 하여 마셔도 그만 안 마셔도 그만 술과 더불어 유유자적하는 사람으로 주성(酒聖)이라 하고, 8단은 관주(觀酒)라 술을 보고 즐거워하되 이미 마실 수는 없는 사람(酒宗)을 일컬른다. 마지막 최고단계는 9단으로 폐주(廢酒) 혹은 열반주(涅槃酒)라 술로 말미암아 다른 술 세상으로 떠나게 된 사람을 일컬으니, 술 마시다 죽음을 맞이하는 경지다. 조지훈 역시 최고의 경지로 달관하여 저 세상으로 간 인물이다. 기록에 따르면 48세의 나이에 토혈을 하고 숨졌다고 한다. 낙주, 관주의 단계를 넘어 폐주의 세상으로 떠난 것이다.

우리 이웃집에도 주도8단쯤 되는 인물이 한명 있다. 이 친구 술 한 모금이라도 마시면 당장 죽는다는 의사의 마지막 경고가 있어서, 사람들이 동네에서 술을 마시면 그냥 주변에서 술 냄새만 맡고 어정거리다 슬그머니 사라져 버리곤 한다. 전에는 술로 쓰러지기까지 몇 달간 하루 평균 소주 6병 정도를 마셨다고 하는데, 소주 6병이면 혈중알코올 농도가 0.5%이상으로 치사량이다. 그리고 그가 한번 쓰러진 이후 처녀귀신들이 밤마다 나타나 얘기를 주고 받았다는 일화는 내가 이미 어딘가에서 밝힌바 있다. 그런데 이 친구 몇 년을 금주 하는가 했더니 막걸리 정도는 괜찮다고 슬금슬금 한잔씩 하는 모양이다. 이 친구 과연 마지막 단계인 폐주에 등극하여 열반의 세계로 가는지는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성석제의 단편소설 ‘해방 – 술 마시는 인간’을 보면 알코올 중독자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나온다. 요컨대 술이 어떻게 뇌와 몸을 해방시키는가에 대한 고찰이다. 그 대목을 보면

“ 알코올 중독은 취해서 쓰러질 때까지 술을 마시고 정신이 들면 또다시 마셔야 직성이 풀리는 증세이지. 술을 마시면 일차로 대뇌가 해방되지. 밥맛이 생기는 단계를 서서히 지나면 과묵한 사람은 말이 많아지고 소심한 사람은 큰소리를 치고 파멸에 이른 사람은 절망을 잊어. 여기까지는 그럭저럭 봐줄만하네.
더 마시면 소뇌가 해방되네. 비틀거리고 혀가 꼬이지. 제가 흔들거리면서 똑바로 서있는 남들보고 아쭈, 요게 피하네, 하는 사람들 봤겠지. 그 다음에도 더 마시면 중뇌의 해방을 맞게 돼. 체온이 떨어지고 혈압이 떨어진다네.
그다음에는 연수의 해방. 해방은 좋은데 부작용으로 호흡의 곤란이 생기는가 봐. 알코올 혈중농도 0.5퍼센트 이상이 되면 절반은 죽는데, 그러면 영원한 해방을 맞겠지. 그 과정에서 아무나 시비를 걸고 아무데서나 오줌똥을 갈기고 깔아뭉갠 자리에 쓰러져 자고 집에 가서 마누라 패고 애들 때리고 가구 부수는 사람들 있지. 그런 걸 저급이라 하네. 저 혼자 취하고 저 혼자 헛걸 보고 저 혼자 미치면서 저를 뿌리까지 파괴해서 폐인 취급당하는 건 다소간 품격이 있는거고...“
  

술에 관한 이야기를 대여섯시간 걸쳐 쓰면서 명상에 잠겨보니 어느새 몸속에 남아있던 술기운은 사라지고 명료한 정신 상태로 돌아왔다. 그래서 더 이상 글을 쓰고 명상을 하지 않아도 거뜬하게 되었다. 그럼 이만 글을 마치련다. 그런데 나는 요즈음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술시를 맨 정신으로 보내고 해시를 넘기면 이내 새벽까지 불면증에 시달린다. 어떨 때는 뇌가 폭발할 정도의 과민한 상태로 어떤 영감을 얻었는지 이상한 문장들이 마구 떠올라 잠을 청할 수 없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침실에 몰래 양주 한 병을 숨겨두고 있다가 생각이 없어지고 문장이 지워질 때까지 마시다 잠드는 것이다. 대뇌가 해방되어야 잠자리가 편해지는 모양이다. <Jidam>



한태웅

나는 술 얘기만 나오면 기가 죽는다. 이유는 밀밭에만 지나가도 취하기 때문이고 어쩌다 소주 반 잔 정도만 마셔도 대한민국의 술은 혼자 다 마셨느냐는 말을 듣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주불사하는 친구나 한잔 술에 멋진 시와 글을 남기는 사람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전에 올렸던 조지훈의 酒道를 다시 써 본다.



조지훈의 "주도(酒道) 18단계"

1. 불주 (不酒) : 될 수 있으면 안 마시는 사람.
2. 외주 (畏酒) : 술을 겁내는 사람.
3. 민주 (憫酒) : 취하는 것을 민망하게 여기는 사람.
4. 은주 (隱酒) : 돈이 아쉬워 혼자 숨어서 마시는 사람.
5. 상주 (商酒) : 잇속이 있을 때만 술을 마시는 사람.
6. 색주 (色酒) : 성생활을 위해 술을 마시는 사람.
7. 수주 (睡酒) : 잠을 자기 위해 술을 마시는 사람.
8. 반주 (飯酒) : 밥맛을 돋우기 위해 술을 마시는 사람.
9. 학주 (學酒) : 술의 전경을 배우는 사람. 주졸(酒卒)의 단계.
10.애주 (愛酒) : 취미로 술을 맛보는 사람. 주도(酒徒) -1단.
11.기주 (嗜酒) : 술의 진미에 반한 사람. 주객(酒客)- 2단.
12.탐주 (耽酒) : 술의 진경을 체득한 사람. 주호(酒豪) -3단.
13.폭주 (暴酒) : 주도를 수련하는 사람. 주광(酒狂)- 4단.!
14.장주 (長酒) : 주도 삼매에 든 사람. 주선(酒仙) -5단.
15.석주 (惜酒) : 술을 아끼고 인정을 아끼는 사람. 주현(酒賢)- 6단.
16.낙주 (樂酒) : 술과 더불어 유유자적하는 사람. 주성(酒聖) -7단.
17.관주 (觀酒) : 술을 보고 즐거워하되 이미 술을 마실 수 없는 지경에 이른 사람. 주종(酒宗)- 8단.
18.폐주 (廢酒) : 일명 열반주, 술로 인해 다른 세상으로 떠난 사람. 9단.


재미있는 글 올려 주신 장정완 후배님 감사합니다. 04.02. 22:57 -  
정광수(돈)
나는 가끔 나 자신에게 獨白했다. '인류 최대의 적이며 대다수의 남녀를 노예로 만드는,
이 大敵인 술을 상대해서는 안된다.'라고 하면서 또 한 잔을 마시는 내모습.... 슬퍼진다.
후배님 언제 대작 한번합시다. 난 지고는 못가도 마시고는 갑니다.
13번 난 暴酒로 酒狂에 해당 됨. 04.03. 15:48 -  
박신일
내 추축대로 한태웅과 정관수가 와 있었네그려. 내 알기로는 한태웅과 정광수는 극과극 이랄까? 근데 김흥렬이 안 보이네?

근데 후배님이 이글을 어디서 파 온게 아니구 직접 썻다는데 감탄할 뿐이요! 배재학당에 보지 못 했었던던 인물이오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평소 술을 안 마신다. 친구들이나 술좌석에서는 절대로 사양하지 않는데 내 주량이 있어 정신을 놓은 적이 없었다. 04.03. 22:17 -  
박신일
나도 술심부름으로 주전자 반만 배달했었떤 사람인데, 이시영 부통령 조카가 우리 외갓집에 시집오던 날에는 방공호 속에 숨겨놓앗던 약주를 건하게 마시다 술독 옆에서 잠이들었었고, 이신소 생일에 초청을 받아가서 어머님이 딸아 주신 양주를 홀짝홀짝 달콤한 맛에 다 받아마시다 짬뽕이 되는 바람에 수탈일을 꾸긴후로는 절대로 술을 섞어마시지 않는다.

박정희가 지는 살로 담근 밀주 마실때 청개천 물과 강냉이루 빚은 짜가 막걸리와, 미 팔군에서 나온 구두를 삶어우려낸 , 파 와 실고추 째끔 쏭쏭 뿌려넣은 족편을 안주로 들이켰었는데! 아-----, 생각 난다. 최연식! 그래도 그때 그 술맛이 좋았었는데! 지금 이 나이에 생각을 해 보니, 그 술맛이 좋았던게 아니라 함께 마시던 친구들 맛이 좋앗었나부네! 04.03. 22:40 -  
박신일
지금 우리집 창고에는 언제인가 내 아내가 사다 놓은 "시바스 리갈" 한 말짜리 큰 병이 20년이 넘도록 잠을 자구 있는데, 창고를 정리할때마다, "이 여팬내가 무슨 마음먹고 이런 애물단지를 마시라구 사왓노! 됫박이라면 엄두를 내겠지만 말 술을 마시라는 것은 먹지 말라는 뜻이겠지!"라 여겨 박정희한테 도내이슌 했음!

몇일전 내 아내 말이 "북가주 배재 동문회에 기증 해버려!"렷다.

근데 하두 오래 됫는데 시지 않앗을까? 모르겠네!

어재도 밴드가 끝나고 뒤푸리로 "시에라 네바다" 두 조끼를 마시고 밤 열한시나 다 되어 들어왔다. 백인들 남녀노소와 이바구 까다보면 정신이 말똥말똥해져 운전대를 잡았었다. 모두가 나와 같았기 때문에 "자 이제는 술도 깨났으니 다 일어들 납시다!: 다음 주에 또 봅시다. 04.03. 23:05 -  
박신일
술은 백해무익이라 하지만 적당히 마시면 약이 된다 여겨진다. 내 경험으로는. 04.03. 23:08 -  
장정완/89
선배님들,
제가 이글을 올려놓고 잠시 경주에 여행을 갔다왔습니다.
벗곷날리는 경주, 신라의 달밤을 거닐어 보고 싶어서였습니다.
그 사이 선배님들이 많은 댓글들 남겨 놓으셧군요.
일찍 답장 올려 드려야 하는데 경황이 없어 늦엇습니다. 죄송^^
그동안 선배님들 제글 읽으시고 많은 칭찬하여 주셧는데
재미있게 읽으셧다니 정말 고맙습니다.

어젠 한국을 방문하신 서황석 선배님을 만나뵙고 같이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선배님을 뵈니 참 반갑고, 선배님의 끝없는 배재사랑에 감동입니다.
불편하신 몸으로 먼길 오신 것도 힘드신데 두루 배재 출신 동창들을 만나고,
배재의 장래를 걱정하시고 배재 문제를 제안하시니...
별 도움이 되지 못하는 후배로서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선배님들 늘 강건하십시요. 그게 배재의 자랑이 아니겠습니까? 04.17. 10: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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